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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화제41장 사람이 남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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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 세계 최초의 저출산

즉 조선은 자기가 만든 좋은 것들 때문에 사람이 줄기 시작했다.

정조유신 30화 제41장 사람이 남지 않는다 — 헤더컷

『제국 통계원 인구 장기추계』 기해년(1899) 결론.

— 신들이 세 가지 길을 검토하였사옵니다.

一. 낳게 하는 것. 상을 주고 벌을 주는 방법이옵니다. 신들이 검토한 바로는 효과가 미약하고 오래가지 아니하옵니다. 사람은 상 때문에 아이를 낳지 아니하옵니다.

二. 여자를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 이는 『삼척약조』 제1조를 폐하는 것이며, 신들은 이 방안을 검토했다는 사실 자체를 부끄럽게 여기옵니다. 또한 실행하면 우리 기술 인력의 삼분의 일이 사라지옵니다.

三. 밖에서 데려오는 것.

— 신들은 셋째 길밖에 없다고 아뢰옵니다.

둘 — 그래서 만국경위론이 필요했다

여기서 이 소설의 가장 어두운 인과가 드러난다.

『만국경위론』은 제국을 정당화하기 위해 쓰인 것이 아니다. 인구를 조달하기 위해 쓰인 것이다.

장세환이 무인년(1878)에 그 책을 쓸 때, 그는 통계원의 인구 추계를 이미 보고 있었다.

책의 핵심 명제 — 이것은 민족의 문제가 아니라 능력의 문제다. 만주인이 재는 법을 익히면 만주인이 다스리면 된다 — 는 도덕적 선언이 아니었다.

그것은 귀화 정책이었다.


경진년(1880), 조선 제국 국적법이 개정되었다.

— 제국 내 어느 지역 출신이든, 제국이 정한 시험에 합격하고 제국의 관직에 오년 이상 복무한 자는 조선 제국의 신민이 된다. 그 자손도 같다.
— 이 자격에 혈통·출신지·언어를 묻지 아니한다.

이 법으로 1880년부터 1935년까지 오십오 년 동안 조선 제국의 신민이 된 외지 출신자는 팔백사십만 명이다.

그들이 조선의 공장을 돌리고 실험실을 채우고 관청에 앉았다.

조선은 그들 없이는 하루도 굴러가지 않았다.


『의정원 회의록』 신묘년(1891) — 국적법 확대 논쟁.

의원 최인규가 물었다. — 이러다 조선인이 조선에서 소수가 되지 않겠소.

장세환이 답했다. — 이미 그렇게 되고 있소.

최인규가 물었다. — 그것이 두렵지 않소.

장세환이 답했다. — 두렵소. 그런데 나는 다른 것이 더 두렵소.

최인규가 물었다. — 무엇이오.

장세환이 답했다. — 조선인만 남은 조선이오.

장세환이 이어 말했다. — 의원. 오십 년 뒤 이 나라에는 조선 본토 사람이 사천오백만쯤 있을 것이오. 그것으로는 이 나라를 못 돌리오. 지금 우리가 돌리는 기계와 실험실과 광산은 사람이 팔천만은 있어야 하는 규모요.

장세환이 이어 말했다. — 나는 두 가지 중 하나를 골라야 하오. 사람을 받아서 이 나라가 무엇인지 바꾸거나, 사람을 안 받아서 이 나라가 작아지거나.

장세환이 이어 말했다. — 나는 첫 번째를 고르오. 그리고 나는 이것이 옳아서가 아니라 다른 수가 없어서 고른다는 것을 회의록에 남기겠소.

셋 — 그리고 그것이 배신이 되었다

『만국경위론』의 약속과 실제 사이에는 늘 틈이 있었다.

약속은 이러했다. 재는 자가 다스린다. 능력의 문제이지 혈통의 문제가 아니다.

실제는 이러했다.

기술직과 학계에서는 약속이 지켜졌다. 1900년 제국 과학원 고급 인력의 삼십사 퍼센트가 외지 출신이었다.

군의 장성에서는 지켜지지 않았다. 1930년 조선 제국 육해군 장성 이백사십일 명 중 외지 출신은 여섯이었다.

의정원에서는 지켜지지 않았다. 아흔아홉 석 중 외지 배정은 열두 석이었다. 인구로는 팔십 퍼센트가 외지였다.

그리고 죽는 자리에서는 정반대로 지켜졌다.

페르시아 전역 전사자 십칠만 중 본토 출신 이만 삼천.
대전 동원 사망 삼백사십일만 중 본토 출신 백구십사만.
압록강 특별사업 사망 이만 사천삼백구 중 본토 출신 사백열둘.


무인년(1938) 이월, 반둥의 선언문이 이 표를 그대로 인용한다.

— 우리는 재어 보았다. 조선이 가르쳐 준 대로.

— 장부가 틀렸다.


정조유신 30화 제41장 사람이 남지 않는다 — 전환컷

이 세계의 조선사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논평이 있다.

1988년 만주 반환 때 어느 만주 역사학자가 쓴 것이다.

— 조선 제국은 인종주의 제국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실이다. 조선은 우리에게 학교를 열어 주었고 시험을 보게 했고 붙으면 자리를 주었다. 나의 조부가 그렇게 관리가 되었다.

— 그런데 바로 그 때문에 조선 제국이 더 나빴다.

— 인종주의 제국은 사람에게 "너는 우리와 다르다"고 말한다. 그 말은 잔인하나 정직하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사람은 자기가 누구인지 안다.

— 조선은 우리에게 "너는 우리와 같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그 말을 믿고 오십 년을 달렸다. 우리 중 일부는 정말로 같아졌다.

— 그리고 마지막에, 폭탄이 떨어진 곳은 우리 도시였다.

— 우리는 그때 우리가 무엇이었는지를 알았다.

— 우리는 조선의 미래가 아니라 조선의 여유분이었다.


『대서양동맹 공동연구위원회 제1차 연차보고』 1891년

우리는 오 년 동안 조선을 따라잡으려 했습니다. 결과를 정직하게 보고합니다. 우리는 따라잡지 못했습니다. 다만 우리는 이 오 년 동안 훨씬 중요한 것을 배웠습니다. 어디서 따라잡을 수 있고 어디서 따라잡을 수 없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대서양동맹은 실패하지 않았다.

이것이 조선이 가장 크게 오판한 부분이다.


동맹은 오 년 만에 세 가지를 해냈다.

첫째, 국가가 과학에 돈을 대기 시작했다.

1886년 서양 오국의 국가 연구 예산 합계는 조선의 사분의 일이었다. 1900년에는 사분의 삼이 되었다. 1910년에는 조선을 앞질렀다.

액수가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그 돈이 대학으로 갔다는 것이다. 조선의 연구가 국(局)과 원(院)이라는 관청 안에서 이루어진 반면, 서양의 연구는 대학에서 이루어졌고, 대학에는 학생이 있었다.

1910년, 조선 제국이 한 해에 배출하는 이공계 고등 인력은 만 이천 명이었다. 대서양동맹 오국 합계는 팔만 사천 명이었다.

조선은 사람이 없었다. 여전히.

둘째, 통계를 시작했다.

1890년대에 영국·프랑스·독일·미국이 차례로 출생·사망·질병의 전국 등록을 의무화했다. 오십 년 뒤진 출발이었지만, 시작한 순간부터 그들의 보험업과 공중보건이 급격히 개선되었다.

그리고 이것이 동맹의 인구를 늘렸다. 1886년 오국 합계 인구는 삼억 이천만이었다. 1910년에는 사억 사천만이 되었다.

같은 기간 조선 경위권 전체 인구는 일억 사천만에서 이억 일천만이 되었다.

절대 격차는 벌어졌다.

셋째, 그리고 가장 아팠던 것.

이름을 파는 법

조선의 연구 규칙 제4조를 다시 보자.

— 만든 자의 이름을 반드시 적는다. 다만 그 물질은 만든 자의 것이 아니라 원의 것이다.

이 조항은 조선을 강하게 만들었다. 아무도 발견을 감출 수 없었고, 모든 결과가 즉시 공유되었고, 그래서 조선의 지식은 개인이 죽어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이 조항은 조선의 유일한 급소였다.


1901년, 스톡홀름에서 새로운 상이 만들어졌다.

이 세계에서 그 상은 다이너마이트 발명가의 유언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대서양동맹 공동연구위원회가 삼 년을 준비해 만든 것이다.

내부 문서에 목적이 적혀 있다.

— 조선의 연구 체계에는 결함이 하나 있습니다. 그들의 연구자는 이름을 남기지 못합니다. 논문에 이름은 실리나 그것은 기관 목록의 한 줄일 뿐이며, 발견은 원(院)의 것으로 등록됩니다. 조선의 위대한 물리학자 최문경의 이름을 아는 조선 백성은 거의 없습니다.

— 학자는 돈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학자는 인정으로 움직입니다.

— 우리는 조선이 줄 수 없는 것을 줄 수 있습니다.

—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을 만들고, 그것을 국적에 관계없이 수여하고, 수상자의 이름을 그의 발견에 영원히 붙입시다.

이것은 상이 아닙니다. 입니다.

덫은 작동했다.

첫 십 년 동안 이 상의 물리학·화학 부문 수상자 열여덟 명 중 아홉 명이 조선 제국 출신이었다.

그리고 그중 넷이 수상 후 조선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가장 큰 손실은 1907년이었다.

라구 바네르지.

기축년에 중성자를 발견한 봄베이 출신 물리학자. 그때 마흔둘. 조선 제국 과학원 물리부 부총재.

그가 상을 받으러 스톡홀름에 갔고, 돌아오지 않았다.

그가 상을 받으러 스톡홀름에 갔고, 돌아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