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유신 제6부 경위(經緯)
31화제42장 추격(追擊)
이름을 파는 법
그가 남긴 편지가 있다. 최문경 앞으로 쓴 것이다. 그때 최문경은 예순다섯이었다.

— 스승님께.
— 저는 돌아가지 않습니다. 스승님께서 이 편지를 받으실 때 저는 케임브리지에 있을 것입니다.
— 이유를 세 가지 적겠습니다. 스승님께서 저를 배신자로 여기시더라도, 이유만은 정확히 아셨으면 합니다.
— 첫째, 저는 제 이름을 갖고 싶었습니다. 부끄러운 이유입니다. 그러나 사실입니다. 저는 열여덟 해 동안 제국 과학원에서 일했고, 제가 한 일은 전부 원의 것이 되었습니다. 스승님께서는 그것이 옳다고 하셨고 저도 그렇게 믿었습니다. 그런데 스톡홀름에서 사람들이 제 이름을 부르는 것을 듣고, 저는 제가 십팔 년 동안 무엇에 굶주려 있었는지 알았습니다.
— 둘째, 저는 봄베이 사람입니다.
— 스승님. 제국은 저에게 잘해 주었습니다. 저는 영국령 인도에서라면 평생 측량 서기였을 것입니다. 제국은 저에게 실험실을 주었습니다. 저는 그 은혜를 압니다.
— 그런데 작년에 저는 고향에 다녀왔습니다. 봄베이는 아직 영국령입니다. 저는 거기서 제 사촌을 만났습니다. 그는 저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너희 조선 사람들은 언제 우리를 가지러 오느냐."
— 저는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그가 "너희 조선 사람들"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 십팔 년 만에 저는 제가 어느 쪽인지를 모르게 되어 있었습니다.
— 셋째, 그리고 이것이 진짜 이유입니다.
— 기축년 그 밤을 기억하십니까. 제가 중성자를 확인해 드린 밤 말입니다. 스승님께서는 함을 여시고 『미분』 제7항을 펴셨고, 제8항과 제9항을 저에게 읽히셨고, 제10항에서 멈추셨습니다.
— 저는 그날 이후 십팔 년 동안 그 다음 장을 보지 못했습니다.
— 그리고 재작년에, 저는 제국 과학원이 무엇을 짓고 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압록강 상류의 그 시설 말입니다. 저는 설계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저에게 오는 계산 의뢰의 성격으로 짐작했습니다.
— 스승님. 저는 그것이 무엇인지 압니다.
— 저는 그것을 막을 힘이 없습니다. 서양에 간다고 막아지지도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제가 가면 저쪽도 만들게 될 것입니다.
— 그것을 알면서 갑니다.
— 한쪽만 그것을 가지면 그 한쪽이 세상을 갖습니다. 양쪽이 가지면 아무도 쓰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 저는 그 도박에 제 남은 인생을 걸기로 했습니다.
— 스승님, 용서를 구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하나만 여쭙고 싶습니다.
— 그 열 번째 장에는 무엇이 적혀 있었습니까.
— 라구 바네르지 올림
최문경은 답장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 편지를 죽을 때까지 가지고 있었고, 죽으면서 제국 과학원 금고에 넣게 했다.
두 개의 속도
1910년의 세계는 두 속도로 움직였다.
동맹이 조선을 따라잡은 분야가 있었다.
강철 — 1908년 동맹 생산량이 조선을 넘었다. 부피의 문제였고, 부피에서는 조선이 이길 수 없었다.
함선 — 1912년 동맹의 주력함 총 배수량이 조선의 두 배가 되었다.
철도 — 총연장에서 미국 하나가 조선 경위권 전체를 넘었다.
대포 — 사거리와 정확도에서 사실상 대등해졌다.
항공 — 조선이 1871년에 처음 날았으나, 1913년에는 프랑스가 앞서 있었다. 조선은 알루미늄을 먼저 가졌으나 프랑스는 엔진을 잘 만들었다.
동맹이 따라잡지 못한 분야가 있었다.
화학의 깊이 — 조선의 물질 등록 수가 백만을 넘었을 때 동맹 합계는 십팔만이었다. 이 격차는 신약과 폭약과 소재에서 그대로 나타났다.
셈틀 — 동맹은 조선의 제1대 기계를 1890년대에 복제했다. 제2대는 1915년에 따라잡았다. 제3대는 끝내 따라잡지 못했다.
통계와 금융 — 조선 경위결제망을 대체할 것을 동맹은 만들지 못했다. 만들려면 서로를 믿어야 했는데 그들은 서로를 믿지 않았다.
그리고 원자.
1893년
동맹이 조선과 결별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해다.
1893년 봄, 아르헨티나와 오스만이 동시에 채무 불이행에 빠졌다. 두 나라 국채를 대량 보유한 유럽 은행 사십일 곳이 흔들렸다. 런던의 어음 시장이 얼어붙었다.
세계 금융이 무너지고 있었다.
무너뜨린 것은 조선이었다. 조선 자본이 이십 년 동안 세계 각지에 뿌린 개발 차관이 부실화되면서 시작된 위기였다.
그리고 그것을 멈춘 것도 조선이었다.
1893년 6월 9일부터 7월 4일까지 이십육 일 동안, 조선중앙은행은 은 환산 사천이백만 냥을 세계 시장에 풀었다.
풀어준 대상 중에 잉글랜드은행이 있었다.

그해 여름 런던의 한 신문 사설.
— 우리는 지난 칠 년 동안 조선을 우리 문명의 적으로 규정해 왔다.
— 그리고 지난달, 우리 은행들이 무너질 때 우리를 구한 것은 파리도 베를린도 뉴욕도 아니었다. 서울이었다.
— 조선 사람들은 그 대가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요구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들의 망 안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들의 요구였다.
— 우리는 이제 이것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조선과 싸우는 중이면서 동시에 조선에 의존하고 있다.
—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오래 할 수는 없다. 둘 중 하나를 그만두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 국민은, 의존을 그만두는 쪽을 택할 것이다.
『제국 병기국 전훈보고서』 을묘년(1915) — 페르시아 전역 총평
우리는 이겼다. 그리고 우리는 이 전쟁에서 이긴 것이 가장 나쁜 일이었다고 훗날 기록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 이유를 아래에 적는다.
전쟁은 페르시아에서 났다.
조선은 1886년부터 페르시아에 차관을 주었고, 1901년부터 페르시아 세관을 운영하고 있었으며, 1907년에 페르시아 남부에서 석유를 발견했다.
석유였다.
조선에는 석유가 없었다. 수마트라 유전이 1907년에 확보되었으나 부족했다. 페르시아는 조선의 두 번째 유전이었고, 동시에 러시아와 영국이 오십 년 동안 노려 온 땅이었다.
1911년 가을, 페르시아 북부에서 러시아군과 조선 경위군이 충돌했다.
1912년 봄, 영국이 러시아 편에서 참전했다.
프랑스와 독일은 참전하지 않았다. 미국도 하지 않았다. 이것이 이 전쟁의 성격이다. 총력전이 아니라 국지전이었다.
조선이 이기는 데 삼 년 팔 개월이 걸렸다.
이겼지만 쉽지 않았다.
조선이 압도한 것.
통신. 조선군은 무선을 썼다. 야전 무전기가 대대 단위까지 내려가 있었다. 러시아군은 유선 전화와 전령이었다. 조선의 포병은 관측기가 무전으로 불러 준 좌표로 쐈다. 러시아 포병은 지도를 보고 쐈다.
셈. 조선군 사령부에는 제2대 계산기가 두 대 있었다. 병참 계산과 사표 작성을 했다. 러시아군 사령부에는 참모 이백 명이 있었다.
약. 조선군 부상자의 감염 사망률이 육 퍼센트였다. 러시아군은 삼십일 퍼센트였다. 설파제였다.
하늘. 조선은 이 전쟁에서 처음으로 비행기를 정찰이 아니라 폭격에 썼다. 1913년 여름 카스피해 남안의 러시아 보급창을 알루미늄 골격의 쌍발기 열두 대가 폭격했다. 세계 최초의 전략폭격이었다.
조선이 고전한 것.
사람. 조선 경위군의 전선 투입 병력은 최대 사십일만이었다. 러시아군은 백사십만을 동원했다. 조선은 한 사람이 세 사람을 감당해야 했고, 실제로 감당했으나, 그것은 사람이 죽지 않아서가 아니라 죽는 속도가 느려서였을 뿐이다.
보급. 페르시아까지 물자를 보내는 데 조선 상선대의 절반이 매달렸다. 영국 해군이 인도양에서 통상 파괴를 시작하자 보급이 넉 달 동안 반으로 줄었다.
그리고 유황과 고무와 초석. 전쟁 이 년째부터 부족해졌다. 대서양협약 제5조가 발동되어 동맹 각국이 조선에 대한 전략물자 판매를 중단했기 때문이다.
『전훈보고서』 총평의 마지막 부분이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문서다.
— 우리는 이겼다. 페르시아 남부의 유전을 지켰고, 러시아를 카스피해 북쪽으로 밀어냈다.
— 우리가 잃은 것을 적는다.
— 첫째, 우리는 우리의 모든 패를 보여 주었다.
— 이 전쟁 이전까지 동맹은 우리가 무엇을 가졌는지 정확히 몰랐다. 이제 안다. 무전기도, 폭격기도, 사표 계산도, 설파제도 그들이 다 보았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보다 공장이 많다. 우리가 보여 준 것들을 그들은 오 년 안에 우리보다 많이 만들 것이다.
— 우리가 앞선 것은 시간이지 크기가 아니라고 『만국형세도』가 팔십 년 전에 적었다. 오늘 우리는 그 시간의 일부를 팔아 전투 몇 번을 샀다.
— 둘째, 우리는 우리가 오래 싸울 수 없다는 것을 그들에게 보여 주었다.
— 전쟁 이 년째에 우리 화약 생산이 육십 퍼센트로 떨어졌다. 유황이 끊겼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을 감췄으나 완벽하게 감추지는 못했다.
— 동맹은 이제 답을 안다. 조선과 싸우는 법은 조선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조선을 굶기는 것이다.
— 셋째, 그리고 우리 자신에 관한 것이다.
— 이 전쟁에서 죽은 우리 병사는 십칠만이다. 그중 조선 본토 출신이 이만 삼천이다. 나머지 십사만 칠천은 만주인, 일본인, 대만인, 남양인이었다.
— 우리는 이 숫자를 국민에게 공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 결정은 병기국이 한 것이 아니라 의정원이 했다.
— 신들은 이 결정에 반대했다. 반대 사유를 여기에 남긴다.
— 백이십 년 전, 이 나라의 첫 기록은 죽은 사람의 이름을 적는 장부였다. 그 장부를 만든 이는 자기가 잘못 판단해 사람을 죽였을 때 그 사실까지 적었다.
— 오늘 우리는 십사만 칠천의 이름을 적기는 하되 세상에 보이지 않기로 했다.
— 신들은 이것이 이 나라가 처음으로 스스로에게 거짓말한 날로 기록될 것이라 생각한다.
『전훈보고서』 총평의 마지막 부분이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문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