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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제12장 오회연교(五晦筵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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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실록』 이십사년 오월 그믐 (실제 기록)

상이 경연에서 이르시기를, 내가 즉위한 이래 팔 년마다 한 번씩 크게 뜻을 밝혔으니 이번이 세 번째다 하시고, 임오년의 의리를 밝히시며 신하들에게 각자의 처신을 정하라 하시니, 좌우가 오래도록 대답하지 못하였다.
정조유신 10화 제12장 오회연교(五晦筵敎) — 헤더컷

경신년 오월 그믐, 정조는 경연 자리에서 신하들을 향해 오래 말했다.

그 말은 뒤에 오회연교라 불리게 된다.

내용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일에 관한 의리를 이제 정리하겠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앞으로 여덟 해 동안의 인사를 자기가 직접 짜겠다는 것이었다.

신하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정조가 물었다.

"아무도 없느냐."

없었다.

그날 저녁 정조는 어찰에 이렇게 썼다.

— 오늘 나는 혼자 떠들었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이 나라의 임금인데, 이 나라에서 가장 외롭다.


한주혁은 그때 삼척에 있었다.

경신년 봄에 그는 세 가지에 매달려 있었다.

첫째, 반사로였다. 유리와 강수가 궤도에 오르자 다음은 쇠였다. 조선의 제철은 쇠부리가마에서 괴련철을 뽑는 방식이었다. 대형 고로가 없었고, 강철을 대량으로 만들 방법이 없었다. 한주혁은 반사로를 지으려 했다. 연료와 광석을 분리해서 태우는 노. 무연탄으로도 쓸 수 있다.

문제는 내화재였다. 반사로의 천장은 섭씨 천오백 도를 견뎌야 했다. 조선의 백자 가마가 천삼백 도였다. 이백 도를 더 올려야 했다.

최연이 원덕 고령토에 규석 가루를 섞어 벽돌을 구웠다. 열일곱 번 실패했다. 열여덟 번째에 견뎠다.

둘째, 수경성 시멘트였다. 도계의 석회석과 점토를 섞어 구우면 물속에서도 굳는 회가 나온다. 한주혁은 그것을 알았고, 배합비는 몰랐다. 국원들이 백열두 가지 배합을 시험했다.

셋째가 도로였다.

삼척에서 아무리 만들어도 내보낼 길이 없었다. 백복령과 대관령은 여전히 짐을 넘기지 못했다. 한주혁은 관동 신작로를 계획했고, 예산을 뽑았고, 그 예산이 과학혁신국 삼 년 치라는 것을 확인하고 종이를 접었다.

그가 그 일들에 파묻혀 있는 동안, 유월이 왔다.


『삼척일지』 제14권, 경신년 유월 십사일

유시(酉時)에 한양에서 파발이 왔다. 봉함이 없는 종이 한 장이었다. 총재가 그것을 읽고 아무 말 없이 일어섰다. 말 두 필과 사람 넷을 데리고 곧바로 떠났다. 아무에게도 어디로 가는지 말하지 않았다. — 기록 서유구

종이에는 여덟 글자가 있었다.

상후미령(上候未寧) 배종(背腫)

임금의 몸이 편치 않다. 등에 종기가 났다.

한주혁은 그 여덟 글자를 세 번 읽었다.

그리고 자기가 무엇을 잊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정조는 유월에 죽는다. 그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오 년 동안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그것을 매일 아침 잊었다. 잊어야 일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잊었다.

그는 방으로 뛰어 들어가 궤짝을 열었다.

지퍼백이었다. 오 년 동안 그것은 궤짝 안에 있었다. 그가 조선에 가지고 온 것 중 가장 값진 것이었고, 가장 쓸 수 없는 것이었다.

세어 보았다.

세 알이었다.

원래 열두 알이었다. 정사년 팔월, 가마가 무너져 형제가 화상을 입었을 때 여섯 알을 썼다. 소용없었다. 화상은 항생제로 낫는 것이 아니었고, 그는 그것을 알면서도 썼다. 무오년 겨울에 최연이 손을 심하게 데었을 때 세 알을 더 썼다. 그때는 나았다. 나은 것이 약 때문인지 아닌지 그는 알 수 없었다.

세 알이 남았다.

아목시실린 오백 밀리그램 세 알.

성인의 급성 세균 감염에 표준 처방은 하루 세 번, 이레에서 열흘. 최소 스물한 알.

그는 세 알을 손바닥에 놓고 오래 보았다.

세 알로는 사람을 살리지 못한다. 세 알은 균을 죽이지 못하고 다만 성가시게 할 뿐이며, 성가심을 견딘 균은 더 강해진다. 그가 아는 의학은 그것까지였다.

그는 세 알을 지퍼백에 다시 넣고, 품에 넣고, 밖으로 나갔다.


한양까지 열사흘 걸리는 길을, 그는 엿새 만에 갔다.

말을 세 번 바꿨다. 대관령에서 말이 다리를 접질렸고 그는 걸어서 넘었다. 원주에서 파발마를 강탈하다시피 얻었다. 마패가 있었다.

유월 스무날 밤에 창덕궁에 닿았다.

들여보내 주지 않았다.


"어의청의 허락 없이는 아무도 들이지 않소."

"나는 어사요."

"어사도 아니 되오."

"전하께서 부르시면."

"전하께서는 지금 아무도 부르지 못하시오."

한주혁은 문 앞에 앉았다.

밤새 앉아 있었다.

새벽에 사람이 나왔다. 심환지였다.

일흔한 살이었다. 노인은 밤새 안에 있다 나온 얼굴이었다.

"…한 총재요?"

"예."

"들어가시오."

한주혁이 일어섰다.

심환지가 그의 팔을 잡았다.

"…하나만 물읍시다."

"…"

"그대는 알고 있었소?"

한주혁은 그 노인의 눈을 보았다.

거짓말을 할 수 있었다. 거짓말을 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엿새 동안 잠을 자지 못했고, 거짓말을 지어낼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알고 있었습니다."

심환지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언제부터."

"오 년 전부터입니다."

"…"

"아뢰지 않았습니다."

"어찌하여."

"아뢰면 전하께서 다르게 사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심환지가 손을 놓았다.

그리고 아주 오래 서 있다가, 뜻밖의 말을 했다.

"…잘했소."

한주혁이 그를 보았다.

"내가 그대를 다섯 번 탄핵했소. 여섯 번째도 준비하고 있었소."

"…"

"그런데 그대는 임금에게 앞일을 팔지 않았구려. 앞일을 아는 자가 그것을 팔지 않는 것은 어려운 일이오."

심환지가 문을 열었다.

"들어가시오. 그리고 오늘은 아무것도 팔지 마시오."


정조유신 10화 제12장 오회연교(五晦筵敎) — 전환컷

영춘헌은 어두웠다.

약 냄새가 지독했다. 수은을 태운 냄새였다. 연훈방이었다. 종기에 수은 증기를 쐬는 처방. 한주혁은 그 냄새를 알아보았고, 그것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았고, 그것을 말할 수 없다는 것도 알았다.

정조는 누워 있었다.

등을 보이고 옆으로 누워 있었다. 이불 밖으로 나온 목덜미가 부어 있었다. 붉은 것이 검붉게 변해 있었고, 그 가장자리가 노랬다.

패혈증이었다.

한주혁은 무릎을 꿇었다.

"…전하."

정조가 움직였다.

"…왔느냐."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

"예."

"…엿새 만에 왔다지."

"…예."

"…죽을 뻔했겠구나."

"…"

정조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얼굴이 잿빛이었다. 눈만 살아 있었다.

"한생."

"예."

"내가 죽느냐."

한주혁은 대답하지 못했다.

정조가 웃었다. 웃다가 기침했다.

"…이제는 대답해도 된다. 이제는 다르게 살 시간이 없으니."

"…"

"말하라."

한주혁이 이마를 바닥에 댔다.

"…이레 안에 가시옵니다."


방 안이 조용했다.

밖에서 내관의 발소리가 지나갔다.

정조가 아주 낮게 말했다.

"…역시 그렇구나."

"…"

"나는 열흘 전부터 알았다. 등에 손을 넣어 보면 안다. 살이 죽는 냄새가 난다."

"…"

"한생."

"예."

"울지 말라. 나는 마흔아홉이다. 우리 할아버지는 여든셋을 사셨고 아버지는 스물여덟에 가셨다. 나는 중간쯤 왔다."

한주혁은 눈물을 닦지 않았다. 닦으면 우는 것이 들킬 것 같았다.

정조가 이불 밖으로 손을 냈다.

"…이레라 하였느냐."

"…예."

"그러면 이레 동안 나는 일을 하겠다."


그날 밤부터 엿새 동안, 조선의 국왕은 죽어가면서 나라의 구조를 바꿨다.

첫날 밤, 그는 한주혁에게 물었다.

"네가 지난겨울에 한 말을 다시 하라."

"…전하."

"권한을 나누어 서로 막게 한다 하였다. 그것을 어찌하는지 처음부터 말하라. 오늘 밤 안에 내가 알아들을 수 있게 말하라."

한주혁은 밤새 말했다.

그가 설명한 것은 이런 것이었다.

왕은 그대로 있다. 다만 왕은 결정하지 않는다. 왕은 결정된 것에 도장을 찍는다. 결정은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한다. 그 자리를 의정원이라 하자. 의정원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앉는다. 조정의 대신들, 각 도에서 올라온 사람들, 그리고 만드는 자들 — 즉 과학혁신국과 상단(商團)의 대표.

의정원이 정하면 왕은 도장을 찍는다. 왕이 도장을 안 찍으면 의정원이 다시 정하고, 두 번 정하면 왕은 찍어야 한다.

정조가 물었다.

"그러면 임금은 무엇을 하느냐."

"두 가지를 하시옵니다."

"…"

"첫째, 나라의 이름이 되시옵니다. 사람들이 무엇에 충성해야 하는지 알려면 얼굴이 있어야 하옵니다. 둘째, 의정원이 미치면 그것을 멈추실 수 있사옵니다. 다만 그 힘은 아주 드물게만 쓸 수 있게 하옵니다."

"…그것이 임금이냐."

"임금이옵니다. 다만 죽지 않는 임금이옵니다."

정조가 눈을 감았다.

"…죽지 않는 임금."

"전하께서 가시면 전하께서 세우신 것이 다 무너지옵니다. 그것은 그것들이 전하의 것이기 때문이옵니다. 전하의 것이 아니게 만들면 무너지지 않사옵니다."

정조가 오래 말이 없었다.

그러다 물었다.

"…한생. 너는 나에게 나를 지우라고 하는구나."

"…"

"내가 오십 년을 싸운 것은 임금이 되기 위해서였다. 아비가 뒤주에서 죽고, 열한 살에 나는 살아남기 위해 옷을 벗지 못하고 잤다. 스물다섯에 즉위해서 이십사 년 동안 나는 신하들에게서 임금 자리를 되찾아왔다. 규장각도 장용영도 그것 때문에 만들었다."

정조가 눈을 떴다.

"그런데 네가 지금 나에게, 그것을 도로 내놓으라 한다."

한주혁은 이마를 댔다.

"…그러하옵니다."

"…"

"전하. 전하께서 이십사 년 동안 되찾으신 것은 전하께서 가시면 하루 만에 다시 빼앗기옵니다. 신은 그것을 아옵니다. 신이 알기로 전하께서 가신 이듬해에 규장각이 힘을 잃고, 이태 뒤에 장용영이 혁파되고, 십 년 뒤에는 한 가문이 나라를 통째로 가지옵니다. 그리고 그것이 육십 년을 가옵니다."

"…한 가문."

"…"

"어느 가문이냐."

한주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정조가 웃었다. 아주 희미하게.

"…말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짐작이 간다."

'…말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짐작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