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유신 제2부 삼척(三陟)
9화제10장 강수(强水)
조선에는 유황이 거의 없었다.
현종 때 진산에서 유황광이 발견되어 스무 곳쯤 개발되었으나, 품질이 나쁘고 양이 적었다. 조선의 화약 유황은 오래전부터 일본에서 왔다. 왜황(倭黃)이라 불렀다. 왜관을 통해 사들였다.

한주혁은 그 사실을 오세형에게 듣고 한참을 말없이 있었다.
"…한 해에 얼마나 들여옵니까."
"많을 때 이만 근, 적을 때 오천 근이오."
"제가 필요한 것은 한 해 이십만 근입니다."
오세형이 웃었다.
"…나리. 왜가 미쳤소? 그만큼을 팔겠소?"
"팔지 않겠지요."
"그럼 어찌하려오."
한주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날 밤 그는 『만물지서』에 한 줄을 적었다.
— 조선은 화학의 첫 삽을 뜨는 순간부터 왜에 목이 매인다. 이것을 어찌할 것인가. 나는 답을 모르겠다.
그리고 그 밑에, 지운 자국이 있다.
지워진 글자를 후대의 사료원이 적외선으로 읽어냈다. 이렇게 적혀 있었다.
— 답은 하나뿐이다. 그리고 나는 그 답을 적지 않겠다.
기미년 정월, 첫 강수가 나왔다.
납으로 만든 방은 가로 다섯 자, 세로 여덟 자였다. 그 안에서 유황과 초석을 태우고 김을 앉히기를 열흘. 바닥에 고인 것을 유리병에 받아 다시 졸였다.
한주혁이 유리막대를 그것에 담갔다 꺼냈다.
물처럼 맑았으나 물보다 무거웠다.
그는 그것을 나뭇조각에 한 방울 떨어뜨렸다. 나무가 검게 타들어 갔다. 연기도 불도 없이.
옆에서 보던 국원들이 물러섰다.
이경묵이 물었다.
"…이것이 무엇이옵니까."
"만물을 녹이는 물입니다."
"…무엇에 쓰옵니까."
한주혁은 그 질문에 웃었다.
"내가 이 나라에 온 지 사 년째인데, 이제야 제대로 된 질문을 듣습니다."
그는 유리병을 들어 보였다.
"이 병 하나가, 앞으로 백 년 동안 조선이 만들 모든 것의 어머니가 됩니다."
기미년 삼월, 한주혁은 유황 확보를 위해 사람을 왜관에 보냈다.
오세형의 조카였다. 그는 넉 달 만에 돌아와 이렇게 보고했다.
"왜관에서 이르기를, 유황은 막부의 통제 물자라 정해진 양 밖으로는 내줄 수 없다 하옵니다. 다만 대마도주가 사사로이 융통할 수 있는 것이 삼천 근쯤이온데, 값을 세 곱 쳐야 한다 하옵니다."
한주혁은 그 보고를 듣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옆에 있던 장만복이 대뜸 물었다.
"…나리. 그 유황이라는 게 왜에 그리 많소?"
"화산이 있으니까요."
"우리는 없소?"
"없습니다."
장만복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가서 캐 오면 되지 않소."
방 안이 조용해졌다.
한주혁이 천천히 그를 보았다.
"…무슨 말이오."
"왜에 화산이 있고 우리에겐 없다면, 우리가 가서 캐면 되지 않소. 삼척 땅도 예전엔 다 남의 산이었소. 내가 캐니까 내 산이 된 거요."
"…두목."
"내가 무슨 잘못된 말을 했소?"
한주혁은 대답하지 못했다.
『삼척일지』에 서유구가 그날의 대화를 그대로 적었다. 대화가 끝난 뒤 총재가 반 시진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것까지.
이백 년 뒤, 국립사료원의 정리관은 이 대목에 이렇게 주석을 달게 된다.
— 조선 제국주의의 최초의 문장이다. 그것은 궁궐에서 나오지 않았고, 학자의 붓에서 나오지도 않았다. 광부의 입에서 나왔다. 그리고 아무도 반박하지 않았다.
『정조어찰첩』 기미년 십일월 (심환지에게)
채 대감이 갔다. 김 대감도 갔다. 올해 나는 두 사람을 잃었다. 하나는 나를 살렸고 하나는 나를 가르쳤다. 이제 조정에 나에게 아니 되옵니다라고 말할 사람이 경밖에 없다. 경은 오래 살라. 나는 요사이 몸이 좋지 않다. 종기가 도지고 잠이 오지 않는다. 이것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특히 삼척에는.
기미년 정월, 채제공이 죽었다.
여든이었다. 화성 총리대신이었고, 남인의 영수였으며, 삼십 년 동안 정조의 방패였다.
같은 달 열흘 뒤에 김종수가 죽었다. 노론 벽파의 이론가였고, 정조의 스승이었으며, 삼십 년 동안 정조의 반대편이었다.
두 사람이 열흘 사이에 갔다.
정조는 그해 봄 내내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
삼척에서는 아무도 그것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정약용만 알았다.
그는 그해 봄, 격물소 마당에 앉아 있는 한주혁 옆에 와서 앉았다. 그리고 대뜸 말했다.
"총재. 이 국은 이 년을 못 갑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채 대감이 가셨습니다."
"…"
"총재께서는 이 국이 전하의 명으로 서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이 국은 채 대감이 남인을 붙들고, 김 대감이 노론을 붙들고, 그 사이에서 전하께서 저울질을 하셨기 때문에 서 있었습니다. 이제 저울이 없습니다."
한주혁은 대답하지 못했다.
정약용이 이어 말했다.
"그리고 하나 더 여쭙겠습니다."
"…"
"총재께서 전하께 사십 년을 말씀하셨다지요."

"…그리 말씀드렸습니다."
"전하께서 사십 년을 사십니까."
한주혁은 그 질문 앞에서 손이 차가워졌다.
정약용은 그를 보지 않았다. 마당의 흙만 보고 있었다.
"저는 총재께서 무엇을 아시는지 묻지 않겠습니다. 다만 이것만 여쭙겠습니다. 총재께서 이 나라에 심으신 것 중에, 전하께서 안 계셔도 살아남는 것이 무엇입니까."
"…"
"유리요? 사람들이 사니까 살아남겠지요. 강수요? 그것을 쓸 사람이 조선에 몇이나 됩니까. 종두요? 그건 살아남습니다. 그리고 그것뿐입니다."
정약용이 고개를 들었다.
"총재. 총재께서는 이 나라에 기술을 심고 계신 것이 아닙니다. 전하 한 사람의 목숨 위에 나라 하나를 얹어놓고 계십니다."
그해 시월, 심환지가 다섯 번째 상소를 올렸다.
이번에는 재정 문제가 아니었다.
— 신이 아뢰옵나이다. 삼척의 국이 세운 지 네 해에, 나온 물건이 거울과 안경과 창유리이옵니다. 종두의 공은 신이 인정하는 바이오나 그것은 국이 없어도 할 수 있는 일이옵니다.
— 신이 두려워하는 것은 물건이 아니옵니다. 그 국의 약조 다섯 조목 중 첫째가 반상을 묻지 않는다 함이옵니다. 지금 삼척에는 사노비 출신이 종사품을 달고, 여인이 관문서에 이름을 올리고, 중인이 사대부에게 명령을 내리옵니다.
— 전하. 이것이 한 고을에 그친다면 신은 눈감겠사옵니다. 그러나 그 고을이 나라를 먹이기 시작하면, 나라가 그 고을을 닮게 되옵니다.
— 신은 저 국을 혁파하자 아뢰는 것이 아니옵니다. 신은 다만 여쭙겠사옵니다. 전하께서는 저것이 자라서 무엇이 되는지 아시옵니까. 아신다면 신은 물러가겠사옵니다. 모르신다면, 모르는 것을 키우고 계신 것이옵니다.
정조는 이 상소에 비답을 내리지 않았다.
대신 어찰을 썼다.
— 경의 말이 옳다. 나는 모른다.
— 그런데 경, 나는 아는 것을 키워서 이 나라가 어찌 되었는지도 보았다. 우리가 오백 년 동안 아는 것만 키운 결과가 이것이다.
— 나는 모르는 것을 한 번 키워보겠다. 실패하면 내 무덤에 침을 뱉으라.
— 이 편지는 태우라. 정말로 태우라. 이번 것은 남으면 안 된다.
심환지는 이 편지도 태우지 않았다.
기미년 겨울, 정조가 한주혁을 불렀다.
한양까지 열사흘이 걸렸다. 그가 도착했을 때 창덕궁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정조는 마흔여덟이었다. 사 년 전보다 살이 빠져 있었다. 얼굴빛이 나빴다.
"한생."
"예, 전하."
"네가 열 해라 하였는데 다섯 해가 지났다."
"…그러하옵니다."
"내가 본 것은 거울과 안경이다."
"…그러하옵니다."
정조가 웃었다.
"화를 내지 않으니 재미가 없구나."
"…"
"내가 오늘 너를 부른 것은 꾸짖으려는 것이 아니다."
정조가 몸을 일으켜 창가로 갔다. 창에는 삼척에서 만든 유리가 끼워져 있었다. 조선 궁궐에 유리창이 달린 첫해였다.
"이것이 좋다."
"…"
"눈이 오는 것이 보인다. 예전에는 문을 열어야 보였다. 문을 열면 추웠다. 이제는 춥지 않게 눈을 본다."
정조가 유리에 손을 댔다.
"한생. 나는 이것이 무슨 뜻인지 안다."
"…"
"이것은 벽에 구멍을 낸 것이다. 그런데 바람은 안 들어온다. 세상에 이런 것이 있는 줄을 나는 오십 년 동안 몰랐다."
정조가 돌아섰다.
"네가 말한 다섯 기둥. 그중에 내가 살아서 볼 것이 하나라도 있느냐."
한주혁은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없사옵니다."
정조가 오래 그를 보았다.
"…그러면 나는 무엇을 한 것이냐."
"전하께서는 사다리를 놓으셨사옵니다."
"사다리를 놓은 자는 위에 무엇이 있는지 못 보는구나."
"…그러하옵니다."
정조가 다시 창을 보았다.
눈이 계속 내리고 있었다.
"…한생."
"예."
"내가 죽으면 이것이 다 없어지느냐."
한주혁은 대답하지 못했다.
정조가 스스로 대답했다.
"없어지겠지. 규장각도, 장용영도, 화성도, 다 없어지겠지. 나는 그것을 안다. 나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전하."
"그래서 나는 요사이 다른 것을 생각한다."
정조가 돌아섰다. 그리고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찌하면 내가 없어도 없어지지 않게 하느냐."
한주혁은 그날 밤 궁을 나오지 못했다.
정조가 그를 붙들었고, 둘은 밤새 이야기했다.
『승정원일기』에 그날의 기록은 없다. 사관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이레 뒤, 정조가 심환지에게 보낸 어찰에 이런 대목이 있다.
— 어젯밤에 나는 무서운 소리를 들었다. 그자가 말하기를, 임금이 없어도 나라가 굴러가게 하는 법이 있다 한다. 내가 물으니, 임금의 권한을 나누어 여러 사람에게 주고, 그 여러 사람이 서로를 막게 하는 것이라 한다.
— 나는 화가 나서 그자를 내쫓았다. 내쫓고 나서 네 시진을 잠들지 못했다.
— 경. 나는 그것이 옳은 말이라는 것을 안다. 그것이 나를 미치게 한다.
다만 이레 뒤, 정조가 심환지에게 보낸 어찰에 이런 대목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