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유신 제3부 경신(庚申)
11화제13장 여섯 알
이튿날 새벽, 정조는 심환지를 불렀다.
그리고 셋이 앉았다.

정조가 말했다.
"우상."
"예, 전하."
"경은 이 자를 다섯 번 탄핵했다."
"…그러하옵니다."
"경의 말이 다 옳았다."
심환지가 고개를 숙였다.
"내가 오늘 경에게 한 가지를 맡기겠다."
"…"
"내가 죽은 뒤에, 이 자를 지켜라."
심환지가 고개를 들었다.
"…전하."
"경이 이 자를 미워하는 것을 안다. 그러니 경에게 맡기는 것이다. 좋아하는 자에게 맡기면 그자는 이 자를 신처럼 떠받들다가 이 자와 함께 미쳐버린다. 미워하는 자에게 맡겨야 이 자가 미치지 않는다."
정조가 기침했다. 한참 기침했다.
"…경. 나는 경과 사 년 동안 편지를 주고받았다. 삼백 통쯤 될 것이다."
"…이백구십칠 통이옵니다."
"세고 있었느냐."
"…예."
"태우라 하지 않았느냐."
심환지가 대답하지 않았다.
정조가 웃었다.
"…잘했다. 태우지 말라. 언젠가 누가 그것을 읽고, 임금과 신하가 어떻게 싸우면서 같이 일하는지를 알게 하라."
사흘째 되는 날, 정순왕후가 왔다.
쉰여섯이었다. 정조보다 일곱 살 위인 계모였고, 노론 벽파의 후원자였으며, 실제 역사에서 정조가 죽은 뒤 수렴청정을 하며 이 모든 것을 뒤엎을 사람이었다.
정조가 그녀와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록이 없다.
다만 그날 이후 정순왕후는 반대하지 않았다.
훗날 그녀가 남긴 한 줄이 있다.
— 주상이 나에게 말하기를, 어마마마께서 이 나라를 뒤엎으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뒤엎으신 뒤에 무엇을 하실 것입니까, 하였다. 나는 대답하지 못하였다.
닷새째 되는 날, 한주혁은 세 알을 꺼냈다.
정조가 그것을 보았다.
"…무엇이냐."
"…약이옵니다."
"어디 약이냐."
"…신이 온 곳의 약이옵니다."
"먹으면 낫느냐."
한주혁은 그 질문 앞에서 오래 침묵했다.
"…낫지 않사옵니다."
"…"
"스무 알을 열흘 동안 잡수셔야 하옵니다. 세 알로는 아무 소용이 없사옵니다. 오히려 병이 독해지옵니다."
정조가 손을 내밀었다.
"다오."
"…전하."
"다오."
한주혁이 세 알을 손바닥에 놓았다.
정조가 그것을 들여다보았다. 흰 타원형 알갱이 세 개.
그리고 그는 그것을 삼키지 않았다.
"이것을 가지고 있어라."
"…전하."
"나에게 쓰면 세 알이 없어지고 나는 죽는다. 가지고 있으면 세 알이 남는다. 언젠가 네가 살릴 수 있는 자에게 써라."
정조가 손을 오므렸다.
"…한생. 나는 네가 아는 것을 다 쓰지 못하고 죽는다. 나는 그것이 분하다. 그러나 나는 네가 아는 것을 나 하나에게 쓰는 것이 더 분하다."
여섯째 날, 정조는 붓을 들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말로 했다.
한주혁이 받아 적고, 심환지가 확인하고, 도승지가 옮겨 썼다.
그것이 『경신유조(庚申遺詔)』다.
『조선제국실록』 정조선황제 이십사년 유월 이십칠일
상이 영춘헌에서 유조를 내리시니, 모두 아홉 조목이었다. 도승지가 읽기를 마치자 좌우가 소리 내어 울었다. 상이 이르시되, 울지 말라, 나는 오늘 조선을 두 번째로 세운다 하시었다.
『경신유조』는 아홉 조목이었다.
첫째. 왕세자가 대통을 잇는다.
둘째. 왕이 열여덟이 되기 전에는 대왕대비가 함께 정사를 본다. 다만 삼 년을 넘기지 못한다.
셋째. 의정원(議政院)을 둔다. 정원은 아흔아홉이다. 삼십삼은 조정의 당상관이며, 삼십삼은 팔도와 한성부에서 올려 보내고, 삼십삼은 만드는 자와 파는 자 가운데서 뽑는다.
넷째. 나라의 모든 지출은 의정원을 거친다. 왕의 내탕과 왕실의 살림도 그러하다.
다섯째. 왕은 의정원이 정한 것에 도장을 찍는다. 한 번은 물릴 수 있다. 두 번은 물리지 못한다.
여섯째. 왕은 의정원을 흩을 수 있다. 흩은 날로부터 백 일 안에 다시 세워야 한다. 백 일이 지나면 왕이 자리를 잃는다.
일곱째. 과학혁신국은 의정원에 직속한다. 그 예산은 나라 세입의 이십분의 일 아래로 내리지 못한다. 이 조목은 백 년 동안 고치지 못한다.
여덟째. 과학혁신국 국원과 그 자손은 문무의 길이 막히지 아니한다. 노비로서 국원이 된 자는 그날로 양인이 된다.
아홉째. 초대 의정원 의장에 우의정 심환지를 명한다.
아홉 번째 조목이 읽혔을 때, 심환지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전하. 신은 받을 수 없사옵니다."
"받으라."
"신은 이 모든 것을 다섯 번 반대한 자이옵니다."
"그러니까 경이다."
정조가 눈을 감은 채 말했다.
"…찬성하는 자를 의장에 앉히면, 그것은 의정원이 아니라 나의 그림자다. 반대하는 자를 앉혀야 의정원이 산다."
"…전하."
"우상. 경은 내가 죽은 뒤에 이것을 부수고 싶을 것이다."

"…"
"부수지 말라는 말은 하지 않겠다. 다만 부술 때는 의정원에서 부수라. 다수가 그것을 원하면 부수라. 그때는 나도 할 말이 없다."
심환지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이마를 바닥에 댔다.
일흔한 살 노인이 소리 내어 울었다.
일곱째 조목에는 뒷이야기가 있다.
원래 한주혁이 올린 초안은 "십분의 일"이었다.
정조가 그것을 이십분의 일로 고쳤다.
한주혁이 반발했다.
"…전하. 십분의 일도 부족하옵니다."
"안다."
"…"
"한생. 내가 이십분의 일로 낮추는 것은 인색해서가 아니다."
정조가 눈을 뜨고 그를 보았다.
"십분의 일이면 오십 년 안에 누가 그것을 없앤다. 너무 크기 때문이다. 이십분의 일이면 아무도 없애지 않는다. 없앨 만큼 크지 않기 때문이다."
"…"
"작게 시작해서 아무도 못 없애게 하라. 크게 시작하면 크게 없어진다."
한주혁은 그 말을 이해하는 데 삼십 년이 걸렸다.
그리고 이해했을 때, 그는 이 사람이 자기보다 정치를 이백 년 앞서 알았다고 생각했다.
경신년 유월 스무여드레, 유시.
정조가 죽었다.
『실록』은 이렇게 적었다.
— 이날 유시에 상이 영춘헌에서 승하하시었다. 삼경부터 정신이 흐리시더니 미시에 잠깐 맑아지시어, 곁에 있던 한주혁을 부르시고 무어라 말씀하시었으나 좌우가 알아듣지 못하였다. 한주혁이 이마를 조아리고 물러났다.
무슨 말이었는지는 기록되지 않았다.
이백 년 뒤, 국립사료원 제3고에서 나온 『만물지서』 하권에 그 말이 적혀 있다.
한주혁은 이렇게 썼다.
— 전하께서 나를 부르셨다. 나는 귀를 가까이 댔다. 전하께서는 두 마디를 하셨다.
— 첫째는 이러했다. "네 나라 이야기를 더 해다오."
— 나는 무슨 말이든 해야 했으므로, 내가 살던 도시의 밤에 관해 이야기했다. 밤에도 낮처럼 밝고, 사람들이 유리로 된 집에 살고, 겨울에도 여름 과일을 먹는다고 말했다. 전하께서는 눈을 감고 들으셨다.
— 다 듣고 나서 두 번째 말씀을 하셨다.
— "…좋구나. 그런데 거기 사람들은 행복하냐."
—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 전하께서는 내 대답을 기다리지 않으셨다.
『의정원 제1차 개원 일지』 경신년 팔월 초하루
이날 아흔아홉 명이 창덕궁 인정전 앞뜰에 모였다. 관복을 입은 자가 마흔셋, 도포를 입은 자가 서른하나, 평복을 입은 자가 스물다섯이었다. 평복 중에는 상투를 튼 자와 틀지 않은 자가 섞여 있었고, 짚신을 신은 자도 있었다. 조선에서 이런 광경은 처음이었다.
의정원은 열렸다.
그러나 열린 것과 굴러가는 것은 달랐다.
첫 석 달 동안 의정원이 결정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흔아홉이 모여 아흔아홉 가지 말을 했고, 표결이라는 것을 처음 해 보는 사람들이라 손을 드는 법부터 배워야 했다. 사대부는 상민과 같은 자리에 앉기를 거부했고, 상민은 사대부 앞에서 입을 열지 못했다.
의장 심환지는 그 석 달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았다.
일흔한 살 노인이 매일 아침 인정전 앞뜰에 나와 앉았고,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채로 해가 지면 일어섰다.
넉 달째 되던 날, 그가 처음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오늘도 아무것도 정하지 못했소이다."
좌중이 조용해졌다.
"나는 이것을 다섯 번 반대한 사람이오. 지금도 반대하오. 그런데 여러분."
노인이 지팡이로 바닥을 쳤다.
"반대하려면 무언가 정해야 반대할 것이 아니오. 정하시오. 틀려도 좋소. 틀리면 내가 뒤엎겠소. 뒤엎으려면 먼저 세워야 하오."
그날 의정원은 첫 번째 안건을 통과시켰다.
관동 신작로 건설안이었다. 찬성 오십육, 반대 사십일, 기권 둘.
조선에서 다수결로 정해진 최초의 국가사업이었다.
신유년 정월, 정순왕후가 하교를 내렸다.
실제 역사에서 이 하교는 천주교를 사학(邪學)으로 규정하고 오가작통법으로 색출하라는 명이었다. 그해에 삼백 명이 죽었고, 남인 신서파가 몰살했으며, 정약용이 십팔 년 유배를 갔다.
이 세계에서도 하교는 내려왔다.
다만 문구가 달랐다.
— 사학이 나라를 어지럽히니 다스리라. 다만 삼척의 국에 관계된 자는 의정원의 의논을 거쳐 처결하라.
그 한 줄이 무엇을 뜻하는지, 한주혁은 사흘 뒤에 알았다.
의금부에서 명단이 왔다.
체포된 자가 이백일흔둘이었다. 그중 과학혁신국 국원이거나 국과 연관된 자가 마흔하나였다.
한주혁이 의정원에 불려 갔다.
심환지가 물었다.
"총재. 이 마흔하나 중에 국에 꼭 있어야 할 자가 누구요."
한주혁은 그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말 그대로요. 이름을 대시오."
"…전부입니다."
"전부는 안 되오."
심환지가 명단을 밀었다.
"의정원에서 표결했소. 국의 존속에 필요한 자는 살리고, 나머지는 법대로 하기로. 찬성 오십일, 반대 사십육이었소. 다섯 표 차요."
"…"
"총재. 다섯 표요. 내가 오늘 이 자리에서 그대에게 이 종이를 미는 것이 무슨 뜻인지 알겠소?"
한주혁은 명단을 보았다.
마흔한 개의 이름이 있었다.
이가환. 쉰아홉. 조선에서 수학을 가장 깊이 아는 사람. 삼척 계산소에 로그표 편찬을 지도하고 있었다.
정약종. 마흔하나. 정약용의 형. 국원이 아니었다. 다만 동생 때문에 명단에 올랐다.
이승훈. 마흔다섯. 국원이 아니었다.
권철신. 예순여섯. 국원이 아니었다.
그리고 나머지 서른일곱.
한주혁은 그 종이를 한 시진 동안 들여다보았다.
그는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았다.
그는 사람의 값을 매기고 있었다.
그는 사람의 값을 매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