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유신 제8부 대공위(大空位)
42화제58장 해체(解體)
1988년
만주 남부 반환 협정이 서명된 해다.

조선이 마지막으로 가지고 있던 해외 영토였다.
반환의 이유는 압력이 아니었다. 만주 남부의 인구가 사천만이 되었고, 그중 조선계가 십칠 퍼센트였고, 유지 비용이 수익을 넘은 지 십이 년째였다.
즉 조선은 셈을 해서 내놓았다.
마지막까지 조선다웠다.
1988년 십일월 십일일, 봉천에서 반환식이 있었다.
조선 측 대표가 짧은 연설을 했다. 이백사십 자였다.
— 우리는 이 땅에 백이십 년 있었습니다.
— 우리는 이 땅에 철도를 놓았고 학교를 세웠고 병을 고쳤습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 우리는 이 땅에서 석탄을 가져갔고 사람을 데려갔고 돌아오지 않게 했습니다. 그것도 사실입니다.
— 우리는 오늘 첫 번째 사실만 말하고 떠나고 싶었습니다.
— 그러나 우리는 재는 나라였습니다. 두 개를 다 재지 않으면 재는 것이 아닙니다.
— 우리는 이 땅에서 백구십사만 명을 데려갔고 그중 팔십칠만 명이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 우리는 그 숫자를 오늘 처음 이 땅에서 소리 내어 말합니다.
— 늦었습니다.
이 연설은 조선 국내에서 격렬한 논란을 일으켰다.
연설한 외무차관은 두 달 뒤 경질되었다.
그리고 그 연설문은 지금 조선의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려 있다.
세는 일
조선이 자기가 죽인 사람의 수를 세기 시작한 것은 1971년이다.
전쟁이 끝난 지 삼십일 년 만이었다.
1971년 제1차 조사. 대상은 조선 본토 사망자와 전선 사망자. 식민지 사망자는 "자료 부족"으로 제외되었다.
1996년 제2차 조사. 압록강 시설 사망자 명부가 해제되었다. 최문경이 사십사 년 전에 편찬한 그 명부다. 이만 사천삼백구 명. 그중 이름이 없는 육천이백스물한 명.
2019년 제3차 조사. 경위권 전역 대상. 국제 공동 조사. 아직 진행 중이다.
자바 기근 사망자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백구십만과 삼백사십만 사이 어딘가다.
백오십만 명의 폭이 있다.
확인
1997년, 국립과학원이 사십 년 묵은 서류 한 뭉치를 재검토했다.
최인영의 압수 서류였다.
그녀가 심문에서 마지막으로 부탁한 것이 그것이었다. — 저를 죽이시더라도 그 계산은 확인해 주십시오. 틀렸으면 틀렸다고 적어 주십시오.
사십 년 동안 아무도 열지 않았다.
1997년의 검토 보고서는 스물세 쪽이다.
결론은 셋이었다.
一. 피심문인 최인영의 계산에 산술 오류가 한 곳 있다. 확산 시 우발 발발 확률의 누적 계산에서 연간 확률을 독립사건으로 처리하였는데, 실제로는 상호 상관이 있으므로 이는 위험을 과소평가한 것이다. 즉 오류는 그녀의 결론에 유리한 방향이었다.
二. 다만 해당 오류를 수정하여 재계산하여도 결론은 바뀌지 않는다. 두 시나리오의 기대 피해는 여전히 확산 쪽이 낮다. 다만 그 차이는 그녀가 제시한 것보다 작다.
三. 본 위원회는 마지막으로 다음을 기록한다. 이 계산은 1958년 4월에 압수되어 1997년 3월까지 삼십구 년간 검토되지 아니하였다. 검토를 요청한 자는 처형되었다.
『국립전산원 창립 백주년 기념 자료집』 서문, 1968년
— 우리 원의 시작은 무진년(1868)의 천공표기(穿孔票機)다. 그 기계는 사람을 세기 위해 만들어졌다. 백 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 원의 가장 큰 일은 사람을 세는 것이다. 기계는 만 배 빨라졌으나 하는 일은 같다.
우리는 이 사실이 자랑스러운지 부끄러운지 아직 정하지 못했다.
하나 — 셈틀의 백 년
조선의 계산 기계는 다섯 세대를 거쳤다.
제1대 (1868) — 톱니와 전자석. 초당 반 장. 인구조사용.
제2대 (1898) — 계전기. 초당 열 장. 조건 분기가 들어갔다.
제3대 (1925) — 진공관. 초당 이천 장. 전쟁 중 암호 해독과 사표 계산과 핵분열 확률 계산을 했다.
제4대 (1948) — 반도체. 조선은 이것을 알갱이쇠(粒鐵) 라 불렀다.
제5대 (1961) — 여러 개를 하나에 새긴 것. 판(板) 이라 불렀다.
제4대와 제5대에서, 조선은 처음으로 압도적 우위를 갖지 못했다.
이유는 명확했다. 반도체는 재료의 순도가 전부인 분야였고, 순도는 곧 자본과 인력과 시설의 규모였다.
미국이 1947년에 조선보다 먼저 도달했다. 넉 달 차이였다.
넉 달.
백오십 년 만에 처음으로, 조선은 무언가를 두 번째로 알았다.
『국립과학원 총재 연설』 1948년 2월.
— 나흘 전에 미국의 발표가 있었습니다.
— 우리는 그것을 사 개월 뒤에 했습니다. 우리 연구는 이미 진행 중이었고 결과도 거의 같았습니다. 다만 넉 달 늦었습니다.
— 오늘 이 자리에서 여러 사람이 저에게 물었습니다. 이제 어떻게 되는 것이냐고.
— 저는 이렇게 답하겠습니다.

— 오늘부터 정상입니다.
— 백오십 년 동안 우리는 늘 첫 번째였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뛰어나서가 아니라 우리에게 지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도는 이 년 전에 끝났습니다.
— 지도 없이 걷는 나라는 가끔 첫 번째가 되고 대개 두 번째가 됩니다. 그것이 정상입니다.
— 나는 우리가 이 정상을 견딜 수 있을지 걱정합니다. 우리는 백오십 년 동안 첫 번째인 것에 익숙해졌고, 그것을 우리 정체성으로 삼았습니다.
— 첫 번째가 아닌 우리를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가.
— 이것이 앞으로 백 년 동안 이 나라의 진짜 문제가 될 것입니다.
둘 — 망(網)
1961년, 국립전산원이 조선 본토와 만주의 계산 시설 열한 곳을 회선으로 이었다.
이유는 낭만적이지 않았다. 기계가 비쌌기 때문이다. 한 대를 여러 곳에서 나눠 쓰려니 잇는 수밖에 없었다.
이은 뒤에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기술자들이 계산이 아니라 말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국립전산원 운용 일지』 1963년 4월.
— 회선 사용 시간의 삼십일 퍼센트가 계산이 아닌 것에 쓰이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 내용을 표본 조사한 결과, 기술적 문의가 사십 퍼센트, 업무 연락이 이십오 퍼센트, 나머지 삼십오 퍼센트는 잡담이었다.
— 원장은 이를 금지할 것인가에 대한 판단을 요청받았다.
— 원장의 결정: 금지하지 아니한다. 사유 — "저 잡담 안에 우리가 못 찾은 답이 있을 수 있다. 측명공께서 혼자 아는 것은 아는 것이 아니라 하셨다."
이것이 조선 통신망의 시작이다.
1970년대에 대학과 관청으로, 1980년대에 기업으로, 1990년대에 가정으로 퍼졌다.
2027년 현재 조선의 망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크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조선이 아니다. 조선은 사람이 적다.
셋 — 그리고 기계가 판단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부터 조선의 계산 기계는 새로운 일을 하기 시작했다.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쌓인 자료에서 규칙을 스스로 찾아내는 일이었다.
조선은 그것을 미루어 아는 기계(推知機) 라 부른다.
이 기계가 조선에서 가장 먼저 대규모로 쓰인 곳이 어디인가.
통계원이었다.
이것이 이 이야기의 마지막 원(圓)이다.
무진년(1868)에 조선은 사람을 세기 위해 기계를 만들었다.
그 기계는 백성 하나하나를 종이 한 장으로 바꾸었고, 그 종이로 굶는 사람을 찾아냈고, 병드는 마을을 미리 알았고, 그리고 신축년에 남양에서 죽어도 되는 사람을 골라냈고, 1927년 만주에서 봉기 지도부 십일만 명의 명단을 아홉 시간에 만들었다.
측명공은 그것을 백삼십사 년 전에 예고했다.
— 이것은 세는 데 쓰인다. 그것은 좋은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나쁜 일이다. 같은 장부로 사람을 골라낼 수 있기 때문이다.
— 부디 이 기계를 만들기 전에 그것을 누가 쓰는지를 먼저 정하라. 순서를 바꾸면 늦는다.
조선은 순서를 바꾸었다.
백육십 년 동안 계속 바꾸었다.
『국립전산원 윤리위원회 설치법』, 2003년.
조선이 계산 기계의 사용에 관한 첫 번째 법을 만든 것이 2003년이다.
기계를 만든 지 백삼십오 년 만이다.
법의 제1조는 이렇다.
— 국가는 사람에 관한 자료를 사람을 위하여만 쓴다.
이 조항은 아름답고, 아무것도 규정하지 못한다. "사람을 위하여"의 뜻을 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법의 제2조가 실질적으로 유일하게 작동하는 조항이다.
— 국가가 사람에 관한 자료로 어떤 결정을 내린 경우, 그 결정의 근거와 그 결정에 쓰인 자료의 항목을 그 사람에게 알린다.
이 조항은 남정후가 1850년에 각서에 적은 것과 정확히 같은 말이다.
— 값이 매겨지면 그것은 비교할 수 있게 된다. 셈에 밝은 누군가는 장치를 달지 않는 쪽을 고를 것이다. 나는 그런 자가 나올 것을 안다. 그가 쓰는 표를 만든 자가 나였다는 것을 기억해 주기 바란다.
백오십삼 년 걸렸다.
넷 — 그리고 오늘
2024년, 국립사료원이 제3차 전쟁 사망자 조사에 추지기를 투입했다.
일은 이러하다.
경위권 전역에서 나온 문서 사억 이천만 장을 읽는다. 승선 명부, 노무 계약서, 급여 대장, 병원 기록, 배급표, 호적, 편지, 사진 뒷면의 낙서까지.
그리고 그 안에서 같은 사람을 찾는다.
한 사람은 여러 문서에 다른 이름으로 나온다. 자바 이름과 조선식 이름과 번호가 따로 있고, 표기가 제각각이고, 옮겨 적으면서 틀린다.
사람이 하면 백 년이 걸린다.
기계는 십사 개월에 했다.
기계는 십사 개월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