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유신 제5부 격차(隔差)
23화제32장 흔들린 세계
하나 — 청(淸)
청은 원래의 역사에서도 십구 세기에 무너졌다. 아편과 태평천국과 서양 함대에 삼십 년을 시달리다 이십 세기 초에 끝났다.

이 세계에서 청은 삼십 년 일찍 무너졌다.
무너뜨린 것은 대포가 아니라 염료와 무명과 성냥이었다.
- 을묘년(1855)부터 조선 합성염료가 청 시장을 잠식했다. 강남의 염색업이 오 년 만에 사라졌다. 염색은 백만 가구의 부업이었다.
- 정사년(1857)부터 조선산 기계 방적 무명이 들어왔다. 값이 청의 가내 무명의 사분의 일이었다. 십 년 만에 강남과 화중의 농촌 부업이 붕괴했다.
- 청의 농가는 논에서 밥을 얻고 부업에서 현금을 얻었다. 부업이 사라지자 세금 낼 현금이 사라졌다.
『만국형세도』 제3판의 추산.
— 갑인년(1854)부터 갑자년(1864)까지 십 년 동안, 청에서 부업 소득을 잃은 가구는 대략 사백만에서 육백만으로 추산된다. 인구로는 이천만에서 삼천만이다.
— 우리는 그들에게 총을 쏜 적이 없다.
경신년(1860)에 화중과 화남에서 대규모 봉기가 일어났다.
이 세계에서 그 봉기의 이름은 「직란(織亂)」, 베 짜는 자들의 난이다.
원래의 역사의 태평천국과는 성격이 달랐다. 종교가 아니라 실업이 원인이었다. 지도자는 몰락한 직조업자였고, 구호는 이러했다.
— 조선 무명을 태우라.
봉기는 팔 년을 갔고 이천이백만 명이 죽었다. 청 조정은 진압을 위해 조선에서 무기를 사 왔고, 그 대금으로 관세를 담보 잡혔다.
임신년(1872), 청이 붕괴했다.
한 왕조가 무너진 것이 아니라 국가가 조각났다. 화북, 화중, 화남, 사천, 그리고 만주가 각각 다른 군벌에게 넘어갔다.
조선은 만주를 가졌다.
『의정원 회의록』 임신년 시월.
의원 정대림이 물었다. — 우리가 이 일을 한 것이오?
통상국 제조가 답했다. — 우리는 물건을 팔았을 뿐입니다.
정대림이 다시 물었다. — 그 물건이 이천이백만을 죽였소.
제조가 답했다. — 우리가 팔지 않았어도 영국이 팔았을 것입니다.
정대림이 말했다. — 그 말이 오늘로 마흔일곱 번째요. 나는 세고 있소.
정대림은 정약용의 손자다. 이 집안이 삼 대에 걸쳐 같은 질문을 하고 삼 대 다 진다는 것을, 그는 자기가 마지막 세대라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그의 아들도 물었고 졌다.
둘 — 인도
조선이 인도에 한 일은 두 가지다. 하나는 파괴였고 하나는 창조였다.
파괴. 을묘년(1855) 이후 십 년 동안 벵골의 인디고 농장이 전부 무너졌다. 농장주는 영국인이었고 소작농은 인도인이었다. 무너지자 둘 다 사라졌다.
영국령 인도 정부의 세수가 십칠 퍼센트 줄었다. 영국은 그 구멍을 아편과 면화 수출로 메우려 했고, 그 결과 벵골의 식량 재배 면적이 줄었다.
기묘년(1879) 벵골 대기근. 사망자 추계 육백만에서 구백만.
이 기근은 원래의 역사에도 있었다. 이 세계에서는 팔 년 빨랐고 규모가 컸다.
조선은 그것을 알았다.
『조선 통계원 각서』 기묘년 십일월.
— 벵골의 기근 사망을 대략 칠백만으로 추산하옵니다.
— 이 기근의 직접 원인은 가뭄이오나, 취약성을 키운 것은 지난 이십 년의 작부 체계 변화이며, 그 변화의 시발은 우리 염료이옵니다.
— 이 각서는 열람 등급을 최상위로 하옵기를 청하옵니다.
이 각서는 백사십 년 동안 공개되지 않았다.
창조. 같은 시기에 조선은 인도에서 사람을 데려갔다.
기묘년부터 삼십 년 동안 조선 제국이 인도에서 뽑아 간 유학생은 사만 칠천 명이다. 전액 국비였고, 시험만 붙으면 카스트를 묻지 않았다.
그들 중 상당수가 조선 제국의 과학과 행정을 떠받쳤다.
라구 바네르지가 그중 하나다.
즉 조선은 인도에서 수백만을 굶겨 죽이는 데 기여하고, 같은 시기에 수만 명에게 세계 최고의 교육을 주었다.
이 두 가지가 같은 나라의 같은 정책에서 나왔다는 것을, 이 세계의 인도 역사가들은 백 년 동안 설명하려 애썼다.
셋 — 오스만
오스만은 총 한 발 맞지 않고 없어졌다.
경진년(1880) 채무 불이행. 조선 재무관 마흔둘이 이스탄불에 들어가 세관을 접수했다.
그 뒤 사십 년 동안 오스만은 형식상 독립국이었다. 술탄이 있었고 군대가 있었고 외교관이 있었다.
다만 세입의 육십일 퍼센트가 조선 재무관의 결재를 거쳤다.
신묘년(1891), 오스만 조정이 세관 운영권 회수를 시도했다.
조선은 군대를 보내지 않았다.
경위결제망에서 오스만을 뺐다.
십일 주 만에 오스만 리라가 팔십 퍼센트 폭락했고, 이스탄불에서 식량 폭동이 일어났고, 술탄이 퇴위했다.
새 술탄은 즉위 사흘째에 세관 협정을 갱신했다.

『만국경위론』 제3장에 이 사건이 실려 있다.
— 우리는 오스만을 굴복시키는 데 병사 한 명도 쓰지 않았다.
— 우리가 쓴 것은 전신선 하나와 열한 명의 서기였다.
— 예로부터 성을 무너뜨리는 데는 대포가 필요했다. 오늘날 나라를 무너뜨리는 데는 장부에서 이름 하나를 지우면 된다.
— 이것이 문명의 진보인지 나는 판단하지 않겠다. 다만 이것이 사실이다.
넷 — 아프리카
조선이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삼은 적은 없다.
조선은 아프리카에 간 적조차 거의 없다.
그런데 아프리카 분할은 이 세계에서 원래보다 십오 년 빨랐고 두 배 잔혹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유럽은 조선에 뒤진 것을 알았고, 뒤진 것을 메우려면 자원이 필요했고, 조선이 아시아를 다 가졌으므로 남은 것은 아프리카뿐이었다.
임오년(1882)부터 무술년(1898)까지 십육 년 동안, 아프리카 대륙의 구십사 퍼센트가 유럽 다섯 나라에 분할되었다.
원래의 역사에서 같은 일에 삼십 년이 걸렸다.
그리고 이 세계의 유럽은 더 급했다.
콩고에서, 남서아프리카에서, 수단에서 벌어진 일들의 규모는 원래의 역사보다 컸다. 유럽은 고무와 구리와 다이아몬드를 조선보다 빨리 캐야 했고, 빨리 캐려면 사람을 아껴서는 안 되었다.
『대서양동맹 자원위원회 보고』 1893년.
— 콩고 분지의 고무 수확량을 삼 년 안에 세 배로 늘려야 합니다. 조선의 합성 고무 연구가 언제 완성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 현지 노동력 손실률이 연 십사 퍼센트에 이를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는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입니다.
이 세계의 아프리카에서, 십구 세기 말 이십 년 동안 죽은 사람의 수는 원래의 역사보다 약 사백만 명 많다.
조선은 아프리카에 가지 않았다.
조선은 다만 유럽을 급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다섯 — 그리고 사람이 늘었다
조선이 세계에 한 일 중 가장 큰 것은, 실은 이것이다.
사람이 죽지 않게 만든 것.
우두는 무오년(1798)에 시작되어 신유년(1801)부터 청으로, 을축년(1805)부터 일본으로, 갑술년(1814)부터 인도로, 무자년(1828)부터 유럽으로 퍼졌다. 조선은 종묘를 팔지 않고 나눠 주었다. 값을 매기면 안 된다는 것이 측명공이 남긴 몇 안 되는 명시적 금지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소독법은 병오년(1846)부터.
설파제는 갑신년(1884)부터. 이것만은 팔았다.
그리고 정미년(1907)의 항생제.
세계 인구 추이.
| 연도 | 실제 역사 | 이 세계 |
|---|---|---|
| 1800 | 9.9억 | 10.0억 |
| 1850 | 12.6억 | 14.1억 |
| 1900 | 16.5억 | 23.8억 |
| 1930 | 20.7억 | 36.2억 |
1930년의 이 세계에는 원래보다 십오억 오천만 명이 더 살아 있었다.
이것이 이 소설이 셈으로 답할 수 없는 지점이다.
조선이 죽인 사람은 대전과 식민지와 기근을 다 합쳐 이천만 안팎이다.
조선이 죽지 않게 한 사람은 십오억이다.
일흔다섯 대 일이다.
『만국형세도』 제5판(1901)의 편찬자가 이 셈을 처음 했고, 그 밑에 한 줄을 적었다.
— 이 셈은 옳다. 그리고 이 셈은 아무것도 정당화하지 못한다.
— 나는 왜 그런지 설명할 수 없다. 나는 다만 이 셈을 끝내고 나서 손을 씻고 싶었다는 것을 기록해 둔다.
장세환, 『만국경위론』 초판 서문, 무인년(1878)
나는 이 책에서 조선이 우월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나는 조선이 우월하다는 주장을 가장 강하게 반박할 것이다. 그 반박이 끝나는 자리에서, 여러분은 훨씬 무서운 결론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만국경위론』은 세계사에서 가장 널리 읽히고 가장 잘못 인용된 책이다.
이 책이 위험한 이유는 그것이 인종주의 문서이기 때문이 아니다.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책의 제1장은 「우월의 부정」이다.
— 어떤 이들은 조선인이 남달리 총명하다고 말한다. 나는 그것이 거짓임을 안다. 나는 삼십 년 동안 만주인과 일본인과 인도인과 영국인을 데리고 일했다. 셈이 빠른 자, 손이 정확한 자, 끈질긴 자는 모든 민족에 고르게 있다.
— 어떤 이들은 조선의 유교가 남달랐다고 말한다. 그것도 거짓이다. 우리는 오백 년 동안 그 유교를 가지고 아무것도 만들지 않았다.
— 어떤 이들은 하늘이 우리에게 사람을 보냈다고 말한다. 그것이 사실에 가장 가깝다. 그러나 그것은 자랑이 아니라 요행이다. 요행으로 얻은 것을 자랑하는 자는 다음 요행을 기다리다 망한다.
— 그러므로 나는 선언한다. 조선은 우월하지 않다. 조선은 다만 오십 년쯤 먼저 시작했을 뿐이다.
여기까지가 이 책이 인용될 때 늘 잘리는 부분이다.
여기까지가 이 책이 인용될 때 늘 잘리는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