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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제25장 아편(阿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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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국형세도』의 총론은 아홉 장이다. 그중 세 문단이 이후 백 년의 조선을 결정한다.

— 우리는 저들을 크기로 이길 수 없다. 이것은 앞으로 백 년 동안 변하지 않는다. 인구가 하루아침에 늘지 않고, 땅이 넓어지지 않고, 우리 땅속의 쇠가 저들만큼 되지 않는다.

정조유신 18화 제25장 아편(阿片) — 헤더컷

— 그러므로 우리가 이길 수 있는 축은 하나뿐이다. 속도다. 저들이 한 걸음 뗄 때 우리가 세 걸음 떼면, 우리가 작아도 매년 격차는 벌어진다. 우리는 큰 나라가 되려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빠른 나라가 되어야 한다.

— 빠름은 세 가지에서 나온다. 첫째, 목적지를 아는 것. 둘째, 막힌 길을 걷지 않는 것. 셋째, 실패를 감추지 않는 것. 앞의 두 가지는 측명공이 우리에게 주었고 언젠가 바닥난다. 세 번째만이 우리가 스스로 만들 수 있고 바닥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국(局)의 기록 제도를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라. 그것이 이 나라의 심장이다.


기해년(1839) 여름, 청과 영국 사이에 전쟁이 났다.

조선은 참전하지 않았다.

대신 팔았다.

경자년 팔월부터 임인년 칠월까지, 조선이 청에 판 것은 이러했다.

강선 소총 사만 이천 정.
후장식 강선포 삼백열두 문.
탄약 이백사십만 발.
그리고 화약, 붕대, 석탄산 소독약, 통조림, 야전 전신기 열두 조.

값은 은 사백만 냥이었다. 조선 조정이 그해에 거둔 세금 전체의 네 배가 넘었다.

이 은이 조선 산업화의 진짜 종잣돈이 된다. 조선은 삼십 년 동안 자기 살을 깎아 공장을 지었고, 그 뒤로는 남의 전쟁으로 지었다.


전쟁은 청의 패배로 끝났다.

조선의 무기를 들고도 청은 졌다.

의정원 병기국이 그 전쟁을 분석한 보고서를 냈다. 삼백여덟 쪽이었고, 조선이 청에 파견한 관전무관 열한 명의 현장 기록이 실려 있었다.

결론은 조선 사람들이 예상한 것과 정반대였다.

— 신들은 이 전쟁에서 무기의 우열을 보러 갔다가, 무기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보고 왔다.

— 청군은 우리 총을 들고도 우리 총으로 죽었다. 우리가 판 총 사만 정 중 이만 팔천 정이 전투에 한 번도 쓰이지 않고 창고에 있었다. 어느 창고에 무엇이 몇 정 있는지를 아는 자가 청 조정에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 우리가 함께 판 야전 전신기 열두 조는 하나도 설치되지 않았다. 설치할 줄 아는 자가 없었고, 배우려는 자도 없었다. 광저우의 장군이 북경에 보고를 올리는 데 스물이레가 걸렸다. 그사이에 전선이 육백 리 밀렸다.

— 영국군은 병력이 사천이었고 청군은 이십만이었다. 그런데 실제로 한자리에서 붙은 것은 늘 영국군 이천 대 청군 삼천이었다. 영국은 배로 옮겨 붙이고 싶은 곳에서만 붙었고, 청은 이십만을 이천 리에 흩어 놓고 어디로 오는지 몰라 기다렸다.

— 신들이 아뢰옵니다. 영국의 힘은 대포가 아니라 셋을 아는 것에서 나옵니다. 무엇이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 아는 것, 그것을 옮길 수 있는 것, 옮기는 데 얼마가 드는지 아는 것.

— 이 셋을 아는 나라는 병력의 십분의 일로 이깁니다.

— 그리고 이 셋은 전부 세는 일입니다.


이 보고서의 마지막 세 문장이 조선의 국시가 된다.

一. 무기를 사는 나라는 무기를 만드는 나라를 이기지 못한다.
二. 무기를 만드는 나라는 무기를 세는 나라를 이기지 못한다.
三. 청은 아직도 자기가 세계의 중심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므로 청은 무너진다. 우리는 청이 무너지기 전에 우리 몫을 정해야 한다.

세 번째 문장을 쓴 사람은 스무 살의 서기였다.

이름은 장세환(張世煥). 장세용의 아들이고 장만복의 증손자였다.


『삼척일지』 제149권, 무술년(1838) 팔월 십일일

오늘 격물소 제삼실에서 바퀴를 돌려 번개를 냈다. 자석 사이에 구리를 감은 틀을 넣고 손으로 돌리니 양 끝의 도선에서 불꽃이 튀었다. 얀 안복이 이것을 반 시진 돌렸고, 그 사이 도선에 이어 둔 전신기가 전지 없이 움직였다. 전지 없이 움직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기록 이경묵

한주혁이 조선에 남긴 것 중에 가장 값싸고 가장 파괴적인 문장은 이것이었다.

— 자석을 움직이면 전기가 생긴다. 전기를 흘리면 자석이 움직인다. 이 둘은 같은 것이다.

그는 그 문장을 을묘년에 처음 말했고, 아무도 알아듣지 못했다. 다시 병진년에 말했고, 아무도 알아듣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무진년(1808)에 그것을 『만물지서』 중권 제구권에 적었다.

그리고 서른 해 동안 아무도 그 권을 읽지 않았다.


읽은 것은 얀 안복이었다.

죽은 네덜란드인의 아들이었다. 삼십칠 세였고, 어릴 때부터 유리를 불었으며, 유리 다음에는 전지를 만들었고, 전지 다음에는 전신기를 만들었다.

그가 그 권을 읽은 것은 삼십여덟 살 되던 해 겨울이었다. 읽고 나서 그는 이렇게 적었다.

— 나는 이 문장을 열두 번 읽었다. 열두 번째에 손이 떨렸다.

— 우리는 지금 전기를 전지에서 얻는다. 전지는 구리와 아연과 강수를 먹는다. 전신 한 대를 하루 돌리는 데 아연 두 근이 든다. 아연은 캐야 하고, 강수는 유황을 먹고, 유황은 왜에서 사 온다.

— 그런데 이 문장이 참이라면, 우리는 아무것도 먹이지 않고 전기를 얻을 수 있다. 돌리기만 하면 된다.

— 돌리는 것은 물이 한다. 조선에는 물이 많다.


정조유신 18화 제25장 아편(阿片) — 전환컷

첫 발전기는 손으로 돌렸다. 출력은 등잔 하나만큼도 되지 않았다.

두 번째는 수차에 물렸다. 오십천 상류의 방앗간 물레방아였다. 사흘 만에 축이 부러졌다.

세 번째는 축을 강철로 바꿨다. 두 달을 돌았다. 그러다 감아 놓은 구리선의 절연이 녹아 안에서 붙어 버렸다.

절연이 문제였다.

이때 조선을 구한 것은 옻이었다. 안복이 옻과 아마인유와 송진을 섞어 도선에 입혔고, 그 위에 명주를 감았다. 그것이 조선 최초의 절연 전선이다. 뒤에 이 배합은 『삼척절연방(三陟絶緣方)』으로 표준화되어 팔십 년 동안 쓰인다.

네 번째 발전기가 반년을 돌았다.


을사년(1845) 시월, 삼척 오십천에 조선 최초의 발전소가 섰다.

낙차 열두 길, 수차 네 대, 발전기 네 대. 총 출력은 현대 단위로 환산해 약 팔십 킬로와트였다. 요즘 아파트 한 동을 겨우 밝히는 정도다.

그 팔십 킬로와트가 무엇을 했는가.

첫째, 빛.

삼척 격물소와 야철소의 야간 작업이 가능해졌다. 아크등이었다. 탄소봉 두 개를 마주 대고 전기를 흘리면 눈이 멀 만큼 흰빛이 났다. 조선의 공장은 그해 겨울부터 밤에도 돌았다.

작업 시간이 하루 여섯 시진에서 열 시진으로 늘었다. 다만 사람은 그대로 여섯 시진만 일했다. 『공장 보호 조목』 제이조가 그것을 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선의 공장은 삼교대를 시작했다. 세계 최초였다.

이 사소해 보이는 조치가 조선 산업의 성격을 결정한다. 조선의 공장은 사람이 아니라 기계를 최대한 돌리도록 설계되었고, 사람은 기계를 지키는 자리에 배치되었다. 유럽의 공장이 사람을 갈아 넣는 방향으로 백 년을 간 것과 정반대였다.

이유는 도덕이 아니었다. 조선에는 사람이 없었다.

둘째, 물을 쪼개는 일.

전기를 소금물에 흘리면 소금물이 쪼개진다. 한쪽에서 염소가 나오고 한쪽에서 잿물이 나온다.

염소는 표백분이 되었다. 표백분은 직물 산업의 심장이었다. 그때까지 무명을 희게 하려면 햇볕에 두 달을 널어야 했다. 표백분을 쓰면 두 시진이면 되었다.

잿물(수산화나트륨)은 비누가 되고 종이가 되고 유리가 되었다.

그리고 이것이 조선의 목을 조르던 문제 하나를 반쯤 풀었다. 소다를 만드는 데 강수가 필요했고, 강수는 유황을 먹었다. 전기로 소금에서 직접 잿물을 뽑으면 그만큼 유황이 덜 들었다.

셋째,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 새로운 쇠.

전기를 흘려 광석에서 금속을 뽑는 법을, 조선은 임자년(1852)에 알아냈다.

그렇게 얻은 첫 금속이 경은(輕銀)이었다.

알루미늄이다.

당시 유럽에서 알루미늄은 금보다 비쌌다. 나폴레옹 삼세가 귀빈에게만 알루미늄 식기를 내놓았다는 일화가 남을 만큼이었다. 화학적으로 뽑는 방법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조선은 전기로 뽑았다. 값이 백분의 일로 떨어졌다.

그리고 조선은 그것으로 식기를 만들지 않았다.


『삼척일지』 제171권, 임자년 오월.

— 오늘 처음으로 경은 열두 근을 얻었다. 이경묵 제조가 그것을 손에 들고 한참 서 있다가 이렇게 말했다.

— "이것으로 무엇을 만들지 아시오? 하늘을 나는 것을 만들 거요."

— 좌중이 웃었다. 이 제조가 웃지 않았다.

— "측명공께서 중권 제이십권에 적어 두셨소. 사람이 하늘을 날려면 세 가지가 있어야 한다고. 가벼운 쇠, 가벼운 기관, 그리고 바람을 재는 법. 오늘 첫 번째가 나왔소."


전기가 조선에 준 것은 물건이 아니라 셈법이었다.

경신년(1860), 의정원 산업국이 「국력산정법(國力算定法)」이라는 문서를 낸다. 국력을 재는 새 방법을 제안한 것이었다.

— 예로부터 나라의 힘은 사람 수로 재었다. 사람이 곧 힘이었기 때문이다. 논을 갈고 배를 젓고 창을 드는 것이 다 사람이었다.

— 이제 그것이 틀렸다.

— 사람 하나가 하루에 내는 힘은 정해져 있다. 그것을 우리는 재어 두었다. 성인 남자 하나가 온종일 쉬지 않고 일하면 대략 물 한 섬을 열 길 높이로 사백 번 올린다. 그것이 사람 하나의 하루다.

— 지금 삼척 오십천의 발전소는 그 사람 삼천 명분을 한 시진마다 낸다.

— 즉 저 물레방아 네 대가 하루에 조선 사람 삼만 명이 할 일을 한다. 그리고 그 삼만은 밥을 먹지 않고 병들지 않고 자식을 남기지 않는다.

— 그러므로 신들이 아뢰옵니다. 앞으로 나라의 힘은 사람 수가 아니라 부리는 힘의 총량으로 재야 하옵니다.

— 이 셈으로 다시 재면, 조선은 이미 아라사보다 강하고 프랑스와 어깨를 겨루옵니다. 사람 수로는 삼분의 일인데도 그러하옵니다.

— 그리고 이 셈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이 하나 더 있사옵니다.

— 우리가 사람이 적은 것은 약점이 아니오라, 우리가 힘을 사람으로 세지 않게 만든 이유이옵니다. 저들은 사람이 많아 사람을 아낄 줄 모르고, 우리는 사람이 없어 사람 대신 힘을 씁니다.

— 백 년 뒤에는 이 차이가 나라를 가릅니다.

경신년(1860), 의정원 산업국이 「국력산정법(國力算定法)」이라는 문서를 낸다. 국력을 재는 새 방법을 제안한 것이었다.